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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가 다시는 없게 사회와 가정에서 저 같은 문제아들에게 사랑을 주십시오!"
신창원이 검거되면서 세상에 던졌던 말이다. 범죄자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말이긴 한 것 같다.
신창원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하산리에서 1967년 5월 28일 4남 1녀중 넷째로 태어났다. 신창원의 집은 매우 가난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안 그래도 힘든 나날을 보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신창원의 아머지는 신창원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준 게 아니라 잦은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아버지는 계모를 집에 데려와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했는데 자신이나 형제들이 아플 때도 관심은 커녕 그냥 방치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신창원은 초등학생 때부터 잦은 가출과 많은 사고를 치며 생활했고 중학교에 진학 후 3개월 만에 퇴학을 당하기도 한다.
신창원이 타락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학교 선생님은 신창원에게 돈을 가져오라며 돈도 없으면서 무슨 학교를 다니냐며 폭언을 했다고 한다. 그때 신창원은 자기 안의 악마를 느꼈다고 했다.
불우한 가정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좀 도둑질을 하기 시작했다. 근데 신창원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는데 도둑질을 하고 도망을 가면 멀리 도망가는 것이 아닌 나무 위로 올라가거나 하여 몸을 감추고 쫒아오는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며 그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창원이 14살 때 경찰에 잡히고 말았는데 경찰은 어린놈의 자잘한 좀도둑질이어서 그냥 훈방 조치를 했다. 근데 신창원의 아버지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끌고 가 소년원에 넣어버린다.
이후 신창원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점점 큰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하며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다고 한다.
신창원은 권투를 배우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남의 싸움에 끼는 것을 좋아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여 싸움이 나면 더 큰 깽판을 쳤다고 한다. 그러다 어떤 싸움에 또 끼어들게 되는데 너무 심하게 폭행을 해서 깽 값을 크게 물게 된다. 신창원은 돈을 구하기 위해 선 후배들과 함께 사람들의 삥을 뜯거나 도둑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선후배들과 서울에 상경하게 되고 몰려다니면서 크고 작은 사고들은 치다가 결국 1989년 3월 28일 문구 도매상을 죽이게 되는 살인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실질적으로 살인을 한 사람은 '김양훈'이고 사건에 가담한 신창원을 포함한 4인은 강도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감옥에 들어가고 1994년 부산 교소도로 이감이 된다. 이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발생한다.
1997년 1월 신창원 탈옥 사건
신창원 감옥에서 지내며 노역을 하던 중 작은 실톱 날을 줍게 되는데 이때 신창원은 탈옥을 계획하게 된다. 작은 실톱으로 4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톱질을 한 결과 지름 1.5cm의 쇠창살을 끊고 그 사이를 통해 외벽의 환기통을 타고 탈옥을 시작한다.
신창원은 끊은 창살을 가지고 나와 신축 교회 공사장 담장 밑을 파내고 공사장으로 들어간다. 공사장에서 주은 밧줄을 통해 펜스를 넘어 탈옥에 성공하는데 이 과정이 불과 1시간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다고 한다.
신창원은 탈옥하기 위해서 몸무게를 15킬로나 감량하고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 모범수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탈옥에 성공한 신창원은 500m 정도 떨어진 농가에 침입해서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훔쳐서 4km 정도를 가서 구포 사거리에서 택시를 타고 마침내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 후 2년 6개월 동안 빈집을 터는 등의 추가 범죄를 저지르며 지내게 된다.
신창원은 잡힐 듯 말 듯 체포 직전까지 가서 경찰을 따돌리고 도주에 성공한 게 무려 6번이다. 97만여 명의 인원이 투입되고 전국에 수사본부를 만들고 신창원 검거를 위해 전국이 떠들썩 했다.
신창원은 유독 천안 쪽에 많이 출몰을 해서 천안쪽에 경찰 병력이 많이 배치되고 검문이 심해져 당시 천안 시민들에게도 불편함으로 다가갔다.
신창원은 체포될 뻔했을 때 경찰한테 총도 맞고 뼈도 부러지고 그랬는데 그래도 도주에 성공하고 부러진 뼈도 스스로 맞추고 그랬다고 한다. 추격이 심할 때는 박스에 일주일간 숨어서 쥐를 잡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도주 중인 신창원에게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그 당시 신창원은 전북 익산에 은하수 카페 김 모 씨와 동거를 하며 결혼을 약속하고 지내게 되는데 6월 29일 김 씨는 순천으로 가서 대주 파크빌이라는 곳을 계약하고 신창원과의
동거를 시작한다.
1999년 7월 16일 신창원 검거
동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7월 16일. 결국 신창원은 검거된다.
전남 순천시 연향동 대주파크빌 104동 205호 가스 수리공이었던 당시 뉴스에 나온 신고자 김영근 씨는 수리를 의뢰받은 집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 살고 있는 남자가 신창원과 엄청 닮은걸 느낀다.
그래서 수리공은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 뭘 두고 온 것처럼 연기를 하며 신창원을 재차 확인을 하고 확신을 갖고 신고를 하게 된다. 게다가 부동산에 가서 그 집의 명의가 누구 건지 까지 치밀하게 알아봤다고 한다.
아무튼 가스 수리공의 제보로 오랜시간 도피 생활을 이어오던 신창원이 검거되며 화려한 도피 생활이 마무리된다.
신창원이 검거될 당시 각종 매스컴은 난리였으며 체포 당시 신창원이 입고 있던 셔츠는 일명 '신창원 티셔츠'라고 불리며 유행(?)이 되고 당시 방송에서도 많은 패러디가 있었다.
검거 후 신창원은 22년 6개월의 형량이 더 추가되었고 흉악범들만 가둬두는 청송교도소에 독방에 수감된다. 재수감 후 신창원은 공부를 시작을 했는데 2004년에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도 연달아서 합격했다고 한다. 2011년에 고시에 합격하여 학사 학위까지 따려고 했다.
신창원은 법 쪽도 공부를 하는데 교도소장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4번 걸어 승소를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신창원은 모범수로 얌전히 생활을 하고 2010년 강력범들만 수감되는 2 교도소에서 일반 교소도로 이감되었다고 한다.
2011년 8월 18일 신창원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이에 신창원은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복역 초기에는 신경도 안 쓰다가 재수감 이후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이 아버지밖에 없어서 신창원도 마음을 연 게 아닌가 싶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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